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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행

궁궐의 왕따나무와 사진을 말하다

by 궁미남(궁궐에 미친 남자) 2022. 10. 2.

소나무 왕따나무
경복궁 후궁의 생활공간과 어우러지는 왕따 소나무

 

경복궁 왕따나무와 함께 배우는 발견의 기술

올림픽공원 왕따나무처럼 궁궐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홀로 선 나무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왕따나무가 많은 사랑을 받는 까닭은 그것이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큰 나무 한 그루가 탁 트인 공간을 배경으로 고고하게 홀로 서서 아름다움을 증폭시키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솔직히 왕따나무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경복궁에 있는 또 다른 왕따나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도대체 아름다움을 어떻게 발견해야 할까요?

아름다움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내는 비법이 있는 걸까요?

궁궐을 오랫동안 만나며 그 아름다움과 소통해온 저에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비법이 있습니다!'라고 답할 겁니다.

발견이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특별한 것을 확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랫동안 불을 밝히는 필라멘트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에디슨이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것을 발견했듯이,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나 발명가들이 기대하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통한 발견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궁궐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동안, 저는 사진 촬영에 있어서 발견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궐을 다니다 보면 아름다운 친구들이 곳곳에서 말을 걸어오는데요, 그 목소리에 공명하여 그들과 소통하며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은 굉장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집웅해야 한다는 것은 매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오감을 열어놓고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왕따 소나무, 일명 경복궁 왕따나무도 이렇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방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는 어떤 경로를 따라 아름다움을 담아낼지 궁리했는데요, 때마침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지라 빗물이 튀어오르는 향원지 연못과 보물 향원정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경복궁에 입장하자마자 오른쪽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향원지 연못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 소나무가 저를 향해 손짓을 했답니다.

뒤쪽에는 멀리 경복궁의 우백호인 인왕산이 길게 이어지고 바로 뒤쪽에는 후궁들의 처소로 여겨지는 집경당 건물이 배경으로 펼쳐진 곳에서 말입니다.

아무리 보물 향원정과 그 연못이 아름답다 하여도 이렇게 길을 막아서며 말을 걸어오는 친구를 외면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이 친구를 어떻게 하면 멋지게 담아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로도 아름답지만 조화를 이루면 더욱 아름답다

글을 시작하며 올림픽공원 왕따나무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혹시 그 왕따나무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나무가 크고 아름답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나무를 둘러싼 드넓은 초원 같은 배경 때문인가요?

저도 올림픽공원을 찾아 이 왕따나무를 열심히 촬영한 적이 있는데요, 제가 이 나무에서 느낀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물론 나무 한 그루 그 자체도 사시사철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 추위와 예기치 않은 환경의 변화를 이겨낸 멋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올림픽공원의 왕따나무 주변과 그 뒤편으로 평화롭게 펼쳐진 넓은 초원 같은 공간이 없었다면, 이 나무가 그토록 큰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림픽공원 왕따나무는 측백나무라고 하는데요, 측백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천연기념물 제1호가 바로 대구광역시 도동 측백나무숲일 정도로 사랑받고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귀한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만큼 우리와 시공간을 공유해 왔기에 그 자체로도 소중한 일인데, 드넓은 초원에 고고하게 자리해 있으니 그것을 보는 우리는 위엄이나 압도적인 힘보다는 평안과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경복궁 소나무는 사실 올림픽공원 왕따나무만큼 크지도 않고 탁 트인 배경에 홀로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궁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자리해 있기에 그 주변에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한옥들과 조화를 이루며 특별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에 '경복궁 왕따나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나무 한 그루만으로는 아직 부족할 수 있지만, 이 나무가 주변 공간과 어우러지며 보여주는 조화가 저에게는 크게 와닿았습니다.

버팀목이 없이 자기 힘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큼 자란 소나무 한 그루.그 나무가 조선이 세워질 무렵 북악산과 경복궁의 주산(主山)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인왕산을 배경으로 서서, 단청을 한 궁궐 건물들과 특별한 장면을 연출하는 모습은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은 발견하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고,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멋진 결과물로 만족시켜 줍니다.

제가 사진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끊임없이 담아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발견은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져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이제 경복궁 왕따나무를 발견한 이야기를 넘어 이번 사진을 완성하게 된 또 다른 과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과정이라기 보다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이 소나무를 소개하면서 뒤편에 자리한 후궁들의 생활공간으로 알려진 집경당(緝敬堂)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이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을 때 저는 당연히 뒤편 건물과 어우러지게 담으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건물이 담장으로 이어져 있는데다 그 너머 인왕산의 수려한 능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은 두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첫째, 인왕산의 능선을 최대한 살리되 소나무와 연결이 되도록 하자.

둘째, 소나무와 전통 한옥이 교차하는 부분이 어색하게 되지 않도록 위치를 잡자.

이렇게 하여 마지막으로 결정한 게 소나무의 가장 낮은 잎사귀가 인왕산 능선을 살짝 건드리고, 나무 줄기와 건물의 교차점을 기와지붕들이 교차하는 꼭짓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쪽 끝에 어쩔 수 없이 들어와야 했던 북악산은 정상을 기준으로 딱 절반만 보이도록 조정했고, 나머지 요소들은 화각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되도록 하여 셔터를 눌렀습니다.

결과적으로 경복궁 왕따나무 사진은 만족스러웠고, 이렇게 글을 통해 소개까지 하게 되었으니 만족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의 크고 작은 손짓을 끊임없이 느끼게 될 겁니다.

그렇게 아름다움의 한 줄기 햇살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주변의 모든 친구들과 조화롭게 공명하도록 지휘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2022년 10월 2일

지금궁궐 024

궁궐의 왕따나무와 함께

이호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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