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진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아래의 두 가지 반응을 보이셨을 겁니다.
첫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다.
둘째, 자기만의 답을 하겠지만 상당히 추상적이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반응 가운데 어디에 속하시나요?
물론 제가 언급한 두 가지 외에 다른 반응을 보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사진가이자 화가이기도 한 저에게 누군가가 사진이 무엇인지 물어보신다면 아마 그때 그때 다를 겁니다.
다만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소통'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에게 사진이란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담으려고 애쓰는 저는 사진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사진가는 세상의 아름다움들이 자연스레 만나도록 이어주는 예술가'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저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과 사진가에 대한 정의입니다.
다른 사진가는 사진과 사진가에 대해 다른 관점을 지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제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지금부터 제가 제시한 사진을 통해 사진과 사진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매력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번에 제가 올린 사진에는 기와지붕과 꽃이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와지붕은 꽃이 있기에 주연이 되고, 꽃은 기와지붕이 있기에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없으면 둘 다 주연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 상만 수상한 경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진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요, 두 가지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며 주제를 완성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주제가 너무 분명하여 모두가 주연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사진들도 많습니다.
여러 요소들이 한 가지를 부각시켜 주연의 자리에 앉히는 경우도 많지요.
하지만 이번에 제시한 기와지붕과 꽃이 있는 사진은 두 가지 요소가 힘을 합쳐 이 사진의 매력을 완성하는 경우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기와지붕도 꽃도 2등까지만 오를 수 있을 뿐 1등상을 받기에는 부족합니다.
기와지붕의 역할은 삼각형의 틀로 대칭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꼭짓점을 향해 다가서는 두 곡선들이 지붕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며 자신이 출발한 모서리에서 대각선에 위치한 다른 모서리로 향합니다.
이 지붕의 매력을 발견하셨다면 세상과 행복하게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매력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꽃에 주목해 봅시다.
이 꽃송이들은 오른쪽에서 살며시 등장하여 기와지붕의 꼭짓점 근처까지 나아간 뒤 곡선을 따라 내려가지만 지붕을 더 이상 침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쪽으로 내려다가 보면 몇 송이 꽃들이 기와지붕 안으로 슬쩍 들어간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존중 혹은 긴장관계를 형성하다가 있는 듯 없는 듯 뒤섞이는 순간입니다.
꽃송이들은 극단적이지 않게 지붕의 영역을 조금 침범하여 서로를 자극하며 소통하는데, 이것이 이 사진의 화룡점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촬영하면서 이런 부분을 포착하여 매력적인 요소들을 부각시키고 이어주는 방식으로 두 주연의 매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예술가의 자세
물론 기와지붕과 꽃이 이 사진이 보여주는 매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와지붕의 왼쪽 곡선 부분에 보이는 잎사귀들에 빛이 들어와 연두색으로 빛나는 부분도 매력 포인트이고, 완벽하게 정 중앙을 가리키지 않고 조금 아래쪽에 자리 잡은 기와의 꼭짓점 부분도 시선을 편안하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매력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담으려 하는 요소들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세야말로 세상이 사진가에게 기대하며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 보여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사진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겠지요.
저 또한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는 내용들을 쉽게 얻은 게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가운데 치열하게 궁리하며 정리해낸 것들입니다.
세상의 매력적인 요소들과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소통하며 그 매력을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겨우 알아낸 것이지요.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처럼,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운 사진을 담아내려면 세상과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소통할 준비를 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만날 때 사진가는 단지 셔터를 누르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사진기로 세상을 담는 예술가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22년 10월 3일
사진과 사진가에 대한 생각을 예술가의 관점에서 정리하다
(추신)
덕수궁2022-22 [20220818]
궁궐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에 감탄했던 날.
나의 소통이 저 백일홍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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