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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행

한옥과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

by 궁미남(궁궐에 미친 남자) 2022. 10. 2.

경복궁 강녕전
임금님의 생활공간인 강녕전 마루. 그 사이를 통해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왕비의 정원인 아미산이 보인다.

 

자연 친화적이자 인간 친화적인 한옥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여러 궁궐들은 통치자인 임금이 대소신료들과 나라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통치공간이기도 했지만, 왕실가족은 물론이고 궁궐에서 일하는 궁녀나 환관들의 일터이자 생활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역사적인 공간을 13년에 걸쳐 둘러보면서 저는 자연스레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한옥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궁금하다고 말이지요.

그럼 지금부터 궁궐을 중심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세세하게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궁궐의 건물들도 마찬가지지만 한옥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마루입니다.

저는 어릴적에 한옥 마루에서 생활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런 궁궐 마루가 볼 때마다 정겹게 다가옵니다.

나무 판자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넓은 공간이 보기에도 시원하고, 마루와 함께 공간의 아름다움을 합작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문들이 곳곳에서 열고 닫히며 한옥의 매력을 드러냅니다.

그중에는 문을 떼어 매달아두었다가 추울 때는 그것을 내려 닫아두는 방식으로 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 첨부한 사진을 보면 좌우에 문이 수평으로 매달린 게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계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통 한옥의 분합문(分閤門)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옥은 본채가 있고 그 옆에 누각 형태의 별채가 연이어 붙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본채에는 아궁이가 있어서 온돌로 난방을 하고, 별채인 누각은 그 아래쪽을 비워 공기가 통하게 함으로써 여름을 좀 더 시원하게 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 시원한 누각의 마루에 누워 매미소리를 들으며 무더운 계절을 이겨낼 수 있겠지요.

게다가 기와지붕을 제외한 한옥의 나머지를 구성하는 화강석과 나무의 세련된 결합도 눈에 띕니다.

신발이 닿는 부분까지는 화강석과 같은 돌을 배치하고 신발을 벗은 뒤에는 나무로 된 마루가 펼쳐지니 마모의 정도에 따라 석재와 목재를 지혜롭게 분배했다는 것입니다.

한옥의 예술적이며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기와 지붕일 겁니다.

전통 기법으로 흙을 빚어 구워 올린 수많은 기왓장들이 포개지듯 누워 만들어내는 한옥의 기와지붕은 뜨거운 열기나 비바람, 눈보라 등 기상의 변화를 적절하게 막아내면서도, 바람이 적절히 통하게 하는 통풍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자연 친화적이자 인간 친화적이다 보니 한옥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함께 편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옥의 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정원이라는 특별한 요소로 더욱 빛나는 한옥

대부분 나무와 돌, 흙과 종이로 만들어진 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방으로 창을 열어 통풍도 잘 되고 계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했으니, 한옥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축복과도 같은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한옥을 대할 때마다 한 그루 나무처럼 느껴지고, 한옥으로 들어설 때면 그 나무가 저에게 자기 옆자리를 빌려주는 듯한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땅에 깊이 뿌리내린 큰 나무는 자신과 소통하고 싶어 찾아온 사람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사람은 그 나무와 친구가 되어 함께 소통하며 일생을 보내는 그런 멋스러운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지요.

이제 한옥과 사람의 이 특별한 만남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좀 더 멋진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옥과 함께 어우러져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 공간을 완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곳은 바로 전통 정원입니다.

담장이 있는 집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데요, 담장의 한 곳에 문이 달려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휴식과 잠을 청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제외한 집의 나머지 공간에는 나무를 심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조경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정원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궁궐에는 계단 형식의 정원이 곳곳에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데요, 이번 사진의 가운데로 열린 사각형의 공간 끝에는 멋진 나무들이 자라는 정원이 있습니다.

제가 서서 촬영한 곳은 임금님의 생활공간인 강녕전이라는 곳이고 그 열린 공간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왕비의 정원인 아미산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완성한 궁궐 기획자들은 참으로 대단한 전문가임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소개한 왕비의 정원 아미산(峨嵋山)은 계단식으로 지어진 정원으로서, 구중궁궐에서 갇힌 듯 살아야 했던 왕비를 위해 조선 최고의 건축가와 조경 전문가가 한마음이 되어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듯이 왕과 왕비가 열린 창문을 통하여 공유하도록 계획된 아미산 정원은 음과 양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태평성대를 바랐던 동양적 세계관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아미산 정원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의 좋은 기운이 계단 형태의 아미산 정원을 타고 내려와 중궁전인 왕비의 생활공간까지 내려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아미산 정원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뒤쪽에 건순각이라는 부속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아이를 낳는 산실(産室)이라는 점입니다.

나라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며 가장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산실을 배치했던 왕실의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국보 경회루 반영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 품은 대표적인 연못인 경회지. 경회루의 물그림자가 선명하다.

 

물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전통 정원의 연못

정원은 이처럼 한옥을 더욱 한옥답게 하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중에 저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연못이라는 공간입니다.

사실 아미산이라는 계단식 정원에도 대표적인 연못이 두 군데 있는데요, 혹시라도 경복궁 아미산 정원에 다녀오신 분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했지만 연못이라고는 없었다고 주장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계단식 정원에 연못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고 궁궐 기획자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발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강석을 깎아 사람이 끌어안을 만한 크기로 만들어낸 낙하담(落霞潭)과 함월지(涵月池)라는 연못입니다.

아미산 정원을 둘러보시다 보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두 개의 화강석을 깎은 조형물에 각각 세 글자씩 한자로 그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요, 낙하담은 노을이 떨어져 내리는 연못이고 함월지는 달이 잠기는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식으로 궁궐 기획자들은 아미산이라는 이름의 정원에 해와 달을 떠올리게 하는 돌연못을 조성한 뒤 그 연못에 노을이 떨어져 내린다거나 달이 잠기는 연못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노을이나 달을 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연못을 상상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다시 말해 계단식 정원으로 인해 연못을 설치하기 힘든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돌연못에 해와 달을 담아내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세계를 완성한 것이지요.

참으로 놀랍고 탁월한 상상력이 아닌가요?

이런 작은 연못 외에도 경복궁에는 궁궐의 정원을 대표하는 드넓은 연못이 두 군데 있는데요, 그곳은 바로 국보 경회루를 품고 있는 경회지 연못과 보물 향원정이 깃들어 있는 향원지 연못입니다.

여름이 익어갈 무렵 경회지를 방문하시면 연꽃들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저는 올해도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여름 내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순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했답니다.

향원지 연못에도 연이 심어져 있지만, 2021년 가을 끝자락에 향원정 보수공사가 끝나 연못도 그 시점에 다시 제대로 정비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저는 올해 2022년에 향원지에서 연꽃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궁궐 정원을 대표하는 이곳 향원지 연못의 이름이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라는 뜻의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처럼, 2023년 여름에는 이곳에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연꽃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옥 가운데는 이번에 소개한 기와집뿐만 아니라 초가집이나 너와집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이번에 저는 기와집을 중심으로 전통 정원의 아름다운 요소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멋과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궁궐에서 더 많은 관람객들이 한옥과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10월 2일

지금궁궐 023

경복궁을 둘러본 뒤 궁미남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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