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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행

삶과 죽음이 뒤엉킨 매미의 삶

by 궁미남(궁궐에 미친 남자) 2022. 9. 24.

자연 생태 곤충
여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곤충, 매미

 

1. 맴맴 여름소리

 

"여름의 소리가 들리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모두들 곧바로 이 친구의 울음소리를 떠올릴 겁니다.

아!

알겠다고요?

네, 맞습니다.

바로 매미의 맴맴, 하는 울음소리입니다.

실은 매미가 운다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 울음소리는 자신의 짝, 그것도 생의 마지막을 함께할 운명적인 짝을 부르는 소리이기에, 운다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있어 보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분들 중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만나자 마자 헤어질 것을 예감하고 있기에 매미가 그토록 슬프게 우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많은 분들이 여름을 대표하는 색을 청록이라 생각하듯이, 이 매미소리야 말로 여름을 대표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매미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제 그 신비로운 이야기를 저 궁미남이 소개해 볼까 합니다.

 

2. 오랜 기다림 끝에 감행하는 환골탈태

매미의 삶을 추적하기 전에 먼저 매미가 삶의 전부를 보내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하여 먼저 알아볼까요?

방금 여름소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여름의 색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여름의 대표적인 색은 푸르디 푸른 청록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 같은 계절이라 해도 여름이 단 하나만의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미 '여름을 대표하는 색'이라는 표현에서도 추측하셨겠지만, 청록 외에도 여름은 매우 다양한 색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 찾는 궁궐에는 다양한 여름꽃들이 피어나는데요, 그중에서 덕수궁을 무대로 펼쳐지는 여름꽃들의 향연에 대해서 제가 따로 글을 올린 적도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https://mydaytrip.tistory.com/entry/백일홍-아름다운-궁궐-덕수궁-궁궐에미치다-1296-1 [지금여행:티스토리]

 

여름의 이미지란 이처럼 여름이 품고 있는 색깔과 소리, 움직임 등이 합작해서 하나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싱싱한 계절이 온 힘을 쏟아 키워낸 푸른 숲에서 힘껏 자라나는 수많은 생명들.

여름은 이런 친구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주고 지켜봅니다.

그리고 이 역동적인 계절에 자극을 받은 굼벵이들은 그동안 생활했던 땅 속 깊숙한 곳을 박차고 오르기 시작하지요.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 그 미지의 공간을 향해 홀린 듯 기어오르는 굼벵이의 물결을 떠올려봅시다.

어떤가요?

흡사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날마다 치열하게 도전하는 우리들과 닮은 것 같지 않나요?

 

3.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매미의 삶

봄꽃들이 겨울의 침묵을 깨고 세상의 생명력을 자극한다면, 매미는 어쩌면 곤충들을 대표해서 생명력으로 피어나는 여름의 꽃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허물을 벗기 전 애벌레로 살아가는 동안 매미는 굼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매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굼벵이로 있을 때는 작은 날개 비슷한 게 달려 있고,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는 순간 그 날개 비슷하던 게 활짝 펴지면서 진짜 날개가 됩니다.

이 역동적인 변화를 이뤄내깅 위해 굼벵이는 자신의 터전이었던 땅을 박차고 나와 나무와 풀을 향해 기어오릅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운명적인 시기를 감지하고는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결실을 맺으려고 생애 처음으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지요.

그 기다림의 세월이 무려 7년 정도라고 하니 이 친구 참을 인[忍]을 쓰는 데는 이골이 났을 듯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허물을 벗고 굼벵이에서 매미로 일종의 환골탈태를 하지요.

저는 그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무척이나 신비로웠답니다.

이렇게 단지 구르는 재주만 있어 보였던 굼벵이가 프로 마술사라도 된 듯 자연스레 껍질을 찢으며 짠 하고 매미로 등장하면 땅에서 생활하던 과거는 완전히 잊고 하늘로 생활공간을 바꾸며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문을 열고 땅 위로 솟구친 굼벵이가 날개를 얻어 매미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면 수컷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운명적인 짝을 찾아다니며 특유의 소리를 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매미의 울음이라고 표현하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따라 암컷이 찾아와 한 쌍으로 맺어지면 이들의 결합으로 다음 세대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렇게 2주 정도 짝을 찾고 알을 낳는 과정을 거치면 매미들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으니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 생을 마감합니다.

짝을 찾고 알을 낳기 위한 기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 뒤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미로 환골탈태한 삶은 그 끝을 볼 때까지 죽음의 그림자와 동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7월 28일 덕수궁에서 만났던 매미도 원하던 삶을 후회 없이 살아냈기를 바랍니다.  

 

2022년 9월 24일

궁미남 이호준

자연으로 두 걸음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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