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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행

궁궐의 여름은 어떤 색일까?

by 궁미남(궁궐에 미친 남자) 2022. 9. 24.

석조전 배롱나무
덕수궁을 대표하는 문화재 석조전과 여름을 꽃피우는 배롱나무

 

아름다움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계절이 그려내는 궁궐의 색

궁궐의 사계절은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드러냅니다.

봄에는 매화, 개나리, 산수유가 앞다투어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립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에 나선 올림픽 대표선수들처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곤 하지요.

관람객들마다 반기는 봄꽃들이 다르겠지만, 궁궐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친구를 꼽으라면 매화라 할 수 있습니다.

궁궐의 매화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친구를 들자면 창덕궁 성정각에서 피어나는 홍매와 그 맞은편 칠분서 앞 만첩홍매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홍매의 색깔과 자태에 빠져들어 자리를 떠날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매화가 가장 먼저 달려와 봄소식을 전하면 곧이어 온갖 꽃들이 울긋불긋 꽃대궐을 칠하지요.

순백의 아름다움에 노랑과 분홍을 섞어 화려한 색의 만찬을 준비하는 겁니다.

여름에는 온통 푸르른 녹음으로 채색되는 것 같지만, 실은 고운 여름꽃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여릉이라는 계절에 화룡점정을 합니다.

푸르디 푸른 청록은 이들의 캔버스가 되어주는 셈이지요.

가을에는 아시다시피 붉디붉은 단풍이 시선을 잡아끌고 겨울에는 자연스레 새하얀 설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계절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저는 궁궐이 보여주는 수많은 빛과 색을 마주하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궁궐의 꽃들 가운데 여름이라는 역동적인 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그는 여름내내 연분홍으로 빛나는 여름꽃 배롱나무 꽃이랍니다.

 

기와지붕 배롱나무 하늘
자신도 찍어달라며 화각 안으로 들어온 배롱나무 꽃송이들

 

여름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의 비밀과 사연

궁궐의 색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눈에 띄는 곳을 찾아가 그 주인공의 아름다움을 칭찬해 주고 그와 대화하며 감동한 것들을 자기만의 솜씨로 표현하며 기념하면 됩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덕수궁 배롱나무 꽃과 만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 한 가지 더 있네요!

그들이 빛날 수 있는 까닭을 들자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롱나무가 기와지붕의 끝선에 닿을 듯 말 듯 손을 내밀던 상기된 얼굴을 그 진분홍 빛깔과 대조를 이루는 하늘색과 함께 담았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궁궐 친구들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방법을 알려드린 셈이네요.

여름이라는 계절을 분홍으로 수놓으며 곤충들과 소통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절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을 선물하는 배롱나무.

초본[풀]에 속하는 백일홍이 쉽게 지지 않고 오래 피어 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는데, 이 배롱나무 꽃도 그것에 필적할 만큼 오래 피어있다고 해서 나무백일홍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비밀 하나 알려드리자면 이 배롱나무 꽃은 같은 꽃송이가 지지 않고 계속 피어있는 게 아닙니다.

꽃 한 송이가 지는 동안 주변의 여러 꽃망울에서 꽃이 피어나기에 마치 꽃이 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들도 역동적인 여름처럼 결실의 계절 가을을 향해 달려가며 온 힘을 내어 보는 것이겠지요.

 

정관헌 고종 가배
고종황제가 외국사진들을 접견하거나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

 

매력적인 색과 동행하는 궁궐과의 만남

궁궐에 미친 남자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식은 궁궐 곳곳으로 이어진 길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길에 분명 멋스러움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보면 계절이 수놓은 아주 특별한 색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렇게 궁궐의 색에 반하고 매료되어 그곳에 머무는 내내 그와 함께 동행하며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채우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저로 하여금 궁궐에 더욱 빠져들게 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니 그렇게 자주 궁궐을 찾는데 또 가시나요?"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렇습니다.

궁궐은 언제나 새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냅니다.

제가 궁궐을 찾는 까닭이자 궁궐이 저를 부르는 까닭은 분명 고고하게 아름다움을 갈무리하는 것도 좋겠지만, 서로가 지닌 아름다움의 결로 소통하며 함께 빛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계절이 내려앉아 펼쳐보이는 궁궐의 색 또한 놀라울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궁궐이라는 아름다움 복합단지의 일부분일 뿐이랍니다.

이 때문에 궁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기대되는 저는 또다시 그 숨겨진 매력과 만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어제처럼 오늘 또다시.

 

2022년 9월 24일

궁미남의 궁궐 생각

 

(추신)

덕수궁2022-20

올해로 벌써 덕수궁을 20번째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하늘과 구름과 진분홍 꽃이 어우러진 색의 화음을 감상하기 위해 눈과 귀를 비롯한 오감 전부를 동원하였습니다.

이제는 떠나버린 2022년의 여름이지만 그날 궁궐의 색이 펼쳐낸 아름다운 화음을 이렇게 기념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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